Chicago TRVL NOTE #1 - "첫 만남, 시카고의 아름다운 여름
"
August 2008
TRVL NOTE by Alan Yoo
너무 많이 흘러버린 시간때문에 늦어버린 기록들이라 그 기분 그대로 담지 못할거 같아 망설여진다. 남은 건 수많은 사진들과 메모들. 며칠을 있던 것도 아니고 긴 생활을 한 시카고에서의 시간들은 여행기보다 생활기에 가깝게 느껴진다. 수첩에 적힌 메모들을 블로그에도 올리고 싶었었고 계속 늦어지면 머나먼 과거처럼 멀어질 것만 같아 정리를 시작했다. 이런 정리는 매우 개인적인 일이라 시카고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진 모르겠다.
시카고에 가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 학기를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이수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가게 되더라도 시카고는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2008년 가을학기 수강을 위해 8월 중순의 무더운 한국 날씨 속에서 준비를 마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십시간의 긴 비행끝에 도착한 시카고 오헤어(O'Hare) 국제공항은 이곳 저곳에서 도착한 사람들로 굉장히 북적였다. 비행기가 연달아 내리면서 출입국 심사소에서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비로소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공항 벽에 붙어 있었던 시카고 환영 광고에 적힌 "Make it happen"이란 문구가 아직도 떠오른다. 6개월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하는 기대감에 흥분된 나는 이런 고조된 마음이 돌아가는 날까지 이어질거란 생각도 못했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기숙사 입사가 있어 그 전까지 머물 호스텔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학교 측에서 호스텔 비용을 대주고 셔틀버스 제공도 해줘서 이 시간 동안에는 관광객으로서 시카고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밤이 깊을 때 출발한 버스 창가에서 바라본 시카고 다운타운의 야경은 정말 멋졌다. 고층 빌딩들이 우거진 모습이 당시 Dark Knight 상영으로 기억에 또렷한 고담시티와 오버래핑되면서 색다른 기분을 맛보았다.
긴 생활을 위해 가져온 커다란 이민가방과 짐들로 인해 끌고다니기 힘들었다. 여행 수준이 아닌 생활 수준의 짐은 실로 차이가 굉장히 크다. 머무른 호스텔은 호스텔 체인으로 유명한 Hi Hostel의 시카고 지점으로 방 수준도 좋고 로비, 투숙객을 위한 각종 쿠폰, 이벤트 등이 다양해서 큰 불편없이 지낼 수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호스텔 로비에 선 나는 불현듯 찾아온 어색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문화, 인종, 언어 한 가운데 있는 기분이였다. 낯선 곳에서 청한 잠은 새벽같이 일찍 깨어났다. 로비에도 나같은 사람들이 몇 있었고 다들 가져온 랩탑으로 전화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첫날부터 말썽인 호스텔 무선네트워크 때문에 함께 불평을 떨었었다. 미국에서의 첫 날의 기록과 생각들을 워드에 써내려가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시카고에서의 첫 아침은 상쾌했다. 당시 너무나도 습했던 서울의 날씨와 비교될 정도로 한 여름에도 습하지 않은 시원한 시카고의 여름이다. 하지만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썬글라스가 없었던 나는 해가 있는 방향으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호스텔은 다운타운 내에서 남쪽에 위치했는데 버스나 지하철역이 가까워 돌아다니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호스텔을 나와 서쪽으로 가면 Chicago Stock Exchange가 보이고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Chicago Public Library가 있다. 위에 보이는 도로교통사인은 시카고에서 처음 찍은 사진이라 기분이 남다르다.
다운타운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었던 State Street와 현재의 중심가인 Michigan Avenue을 걸으며 주변에 우뚝한 시카고의 자랑인 건축물들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큰 화재로 건물의 대부분을 잃었던 아픈 상처가 있는 시카고는 세계 각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프로젝트로 여러 건물들이 세워지며 건축 도시로 일약 떠오른 역사가 있다. 호스텔 가이드의 말을 따르면 세계 첫 엘리베이터을 가진 건물 또한 시카고에 있다고 한다. 뉴욕 여행 후에 느낀건데, 뉴욕 역시 초고층 빌딩숲으로 이루어진 도시이지만 사람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같은 고층 건물들로 빽빽한 시카고는 그렇지 않았다. 특유의 정돈된 네모다란 느낌을 뉴욕에서 받았다면, 시카고에선 고풍적이고 오래된 흔적들이 남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만의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만, 뉴욕에서의 인위적인 기운을 시카고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시카고가 자랑하는 밀레니엄 파크(Millennium Park)는 개장한지 몇년 안된 다운타운에 위치한 큰 공원이다. The Bean이라 불리우는 Cloud Gate와 시카고 시민들이 스크린에 나와 마치 입에서 물이 나오는 듯한 연출을 보여주는 Crown Fountain 그리고 프랭크 게리가 지은 Jay Pritzker Pavilion 등 굵직굵직한 건축물과 예술이 있는 시카고 시민들의 쉼터이다. 바로 옆에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Symphony Orchestra까지 위치하고 있어 문화 생활을 하는데 이만할 수가 없다.
밀레니엄 파크의 건축물 중 The Bean은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는 재미난 조형물이다. 겉모습이 마치 콩을 닮았다고 하여 원래 이름인 Cloud Gate보다 The Bean으로 더 많이 불리운다. 안으로 들어가면 조형물의 반사되는 재질때문에 사진처럼 주위 환경이 아름답게 반사되어 보여진다. 안에서는 천창이 어디 높이 까지 있는지 구분이 안갈정도로 착시현상도 보여준다. 사진은 The Bean 내부의 정 가운데서 올려다 본 모습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들 즐거워하며 신기해하는 모습들이 가득했다.
프랭크 게리의 아름다운 Jay Pritzker Pavilion은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곳으로 커다랗고 특이한 조형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시카고에선 특히 여름에 야외 행사가 많이 펼쳐지는데 이곳에선 음악 공연이 자주 펼쳐진다. 때마침 한 오케스트라가 저녁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 중이라 기분 좋은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밀레니엄 파크를 즐길 수 있었다. 화창한 날씨 속 한적하고 드넓은 공원, 거기에 아름다운 음악까지 더해진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가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음 날은 다니게 될 IIT를 방문코자 가보았다. 학교 바로 옆에는 메이저리그 팀인 Chicago White Sox의 홈구장이 있어 야구를 좋아하는 나로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굉장히 가까이 있어 내가 머문 기숙사 창문으로 폭죽 터지는게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시카고 다운타운을 가르는 Chicago River는 주위의 고층 건물과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낸다. 화창한 날씨 속에 산책 나온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내내 즐거움을 느꼈다. 시카고는 Chicago River와 바로 옆에 있는 오대양 중 하나인 Lake Michigan이 있어 보트 투어도 즐기고 북쪽에는 해수욕장까지 있어 바다 옆 도시가 부럽지 않다. 날씨 좋은 여름에는 Lake Michigan에 빽빽히 정박 중인 보트들을 볼 수도 있다. Lake Michigan에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뜨거운 시카고를 식혀준다.
독특한 구조로 인해 눈에 띄는 이 쌍둥이 건축물은 Marina City로 시카고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1/3 정도가 주차장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주거용으로 쓰이는데 부채꼴 모양의 공간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커다란 건물을 이루는 모습이 상당히 독특했다. 시카고 가기 전 사놓은 여행책에 담긴 Marina City를 눈 앞에서 보는게 재미있어 사진으로 하나 남겨두었다.
시카고의 또다른 자랑거리인 Navy Pier는 작은 놀이 공원이라 불러도 좋다. IMAX, 놀이시설, 보트투어, 쇼핑몰 등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한 이곳은 마치 서울의 COEX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선 그늘 찾기가 힘들어 따가운 햇빛 속에 오랜 시간을 있다보니 어찌나 힘들던지 바로 옆의 Sunglass Hut에서 무심코 선글라스를 충동 구매 할 뻔했다.
미국에 처음 와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는 바로 Apple Store였다. MacBook Pro를 산지 얼마되지 않아
애플에 열을 올릴 때라 한국에는 없는 Apple Store에 꼭 가보고 싶었다. Michigan Avenue를 따라 이동 중에
발견한 Apple Store를 보고 기쁜 마음에 카메라를 꺼내 사진으로 찍었다. 이날 오후에는 중심가인 Michigan
Avenue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쇼핑 등 나들이를 하면서 시내 곳곳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때마침 North Beach에서는 Air Show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일년에 한번 하는 큰 행사인지라 수천의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근처에서 운행하는 버스도 못타고 수 정거장을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Lake Michigan은 너무나도 큰 면적의 호수라 호수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큰 규모라 작은 바다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하물며 이렇게 해수욕장까지 있는데 말이지. 너도나도 담요랑 간이의자를 가지고 나와 해변가에 자리 잡아 관람을 하고 있었는데 멋진 곡예팀들이 펼치는 에어쇼는 장관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펼쳐지는 에어쇼는 마치 하늘이라는 큰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다를 바 없었다. 에어쇼가 끝나고 근처 잔디밭에서 누워 한가로운 오후를 만끽했는데,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란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평온한 시간이였다.